매년 분기나 연말이 되면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 있습니다. 팀원들은 지난 몇 달간의 업무 기록을 찾기 위해 슬

랙, 이메일, 노션을 분주하게 오갑니다. 리더들은 그렇게 제출된, 때로는 기억에 의존해 급하게 작성된 회고록을 읽

으며 사실관계를 맞추려 애씁니다.



어느새 성과관리 시즌은, 본래의 업무와는 별개로 지난 성과를 ‘증명’해야 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과업이 되어버렸

습니다. 우리는 왜 ‘일’ 그 자체보다 ‘일의 증명’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 걸까요?



1. 문제의 시작, ‘증명의 공백(The Void of Proof)’

첫 글에서 우리는 뛰어난 인재의 성과가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'사내 정치'의 문제점을 이야기했습니다.

그렇다면 왜 이런 정치가 조직에 뿌리내릴 수 있는 걸까요?



그 근본 원인은 바로 ‘증명의 공백(The Void of Proof)’ 때문입니다.

증명의 공백이란, 성과가 만들어지는 ‘과정’과 그 성과를 ‘증명’해야 하는 시점 사이에 존재하는 데이터의 단절을 의미합니다.



팀원의 노력,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, 작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은 모두 ‘과정’ 속에 흩어져 있습니다. 하지만 평가

는 보통 분기 혹은 연말이라는 특정 ‘시점’에 이루어집니다. 이 공백 기간 동안,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대

부분 사라지고 리더의 주관적인 ‘인상’과 팀원의 뒤늦은 ‘기록’만이 남게 됩니다.



그리고 바로 이 ‘증명의 공백’을 메우기 위한, 본질에서 벗어난 노력이 시작됩니다.

우리는 이것을 ‘성과관리 노동’이라 부릅니다.



2. 본질을 잃어버린 ‘성과관리 노동’의 두 얼굴

1. 팀원의 노동: ‘일을 위한 일’의 반복

팀원들은 자신의 노력이 잊히거나 왜곡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‘증명’을 위한 추가 업무를 수행합니다.



  • 평가를 위한 기록: 성과 공유가 아닌, 평가 시즌에 활용하기 위해 주간 보고서나 업무 툴에 내용을 채워 넣습니다.
  • 자기소개서 같은 회고록: 실제 기여보다 어떻게 하면 더 그럴듯하게 보일지, 어떤 키워드를 넣어야 할지를 고민하며 회고록을 작성합니다.
  • 보여주기식 보고: 실제 진척 상황보다는 내가 무언가 ‘하고 있다’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불필요한 보고와 공유에 시간을 쏟습니다.



이 모든 ‘노동’은 성과 창출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있습니다. 일의 목적이 ‘성과’가 아닌 ‘증명’이 되는 순간, 팀원들은 지치고 냉소적으로 변해갑니다.



2. 리더의 노동: 평가자가 아닌 탐정이 되어야 하는 현실

리더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. 공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막중하지만, 손에 쥔 증거는 턱없이 부족합니다.



  • 기억력에 의존하는 평가: 팀원들의 지난 몇 달간의 모든 과정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. 결국 최근의 일이나 임팩트가 컸던 사건 위주로 평가하는 ‘최신 효과(Recency Bias)’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.
  •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: 팀원들이 제출한 회고록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과거 이메일과 채팅 기록을 다시 찾아보며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.
  • 주관적 인상에 기댄 결정: 객관적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‘태도가 좋은 직원’, ‘나와 소통이 잦은 직원’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될 위험이 커집니다. 이것이 바로 정치가 개입하는 지점입니다.



결국 리더와 팀원 모두 ‘평가’라는 하나의 이벤트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감정을 소모합니다.

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할 성과관리가, 서로를 지치게 만드는 관리 비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.



3. 우리는 그저 ‘본질’에 집중하고 싶을 뿐입니다

오블릿은 지난 수년간 수천 명의 고객을 만나며 그들이 값비싼 성과관리 툴을 도입하고도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

알 수 있었습니다.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해도, ‘증명의 공백’을 메우기 위한 ‘성과관리 노동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

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었습니다.



오블릿은 이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합니다.



일의 본질은 ‘증명’이 아닌 ‘성과’를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.

성과관리의 본질은 ‘평가’가 아닌 ‘성장’을 돕는 데 있습니다.

리더와 팀원은 서로의 기억을 확인하는 관계가 아니라,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.



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‘증명의 공백’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?



억지로 만들어내는 기록과 데이터가 아닌,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한 증거는 없을까요?



다음 글에서는 이 ‘증명의 공백’을 메우고 사내 정치를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, ‘대화’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.